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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역사 뿌리/상고사

이이제이以夷制夷, 그 경이로움과 두려움에 관하여

by 역뿌 2022.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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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대개 그 사는 땅에 따라서 성격이 결정된다. 오직 동이東夷만이 ‘큰 대大’에서 유래하였고, 큰 성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동이東夷의 풍속은 어질고仁 어질면 장수하므로, 군자가 끊이지 않는 나라이다. 생각건대, 하늘은 크고 땅도 크며 사람도 역시 그 성품이 크다.

 

- 후한後漢 허신許愼의 설문해자說文解字 

 

 

 

안녕하세요? '역뿌'입니다.

 

한자나 사자성어에 대해 관심이 없는 분들일지라도 한 번쯤은 이이제이以夷制夷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풀이하면 '오랑캐로서 오랑캐를 제압한다.'하여 이간질로써 적들끼리 싸움을 붙여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고 제삼자가 이익을 꾀했을 때 쓰는 사자성어이지요.

 

그런데 '이이제이'에서 '이夷'는 다름 아닌 '동이東夷'라 부르던 민족, 즉 우리 선조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아무리 중화주의의 자아도취가 심하다고 하나 우리 선조들을 오랑캐라 불렀다고 하니, 상당히 기분이 나빠지는데요. 사실 여기에는 반전이 있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좀 이따가 다시 언급하기로 하고 지금은 이 오랑캐에 대해 좀 더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동이, 동쪽 오랑캐. 그럼 과연 중원의 역대 국가들에게 오랑캐가 동쪽에만 있었을까요? 물론 아니었습니다. 천하의 중심이라 스스로를 자처하던 중화 민족은 동, 서, 남, 북 사방의 민족들을 전부 오랑캐라 부르며 극단적 민족주의로 우월함을 뽐내려 했습니다. 뭐, 여기까진 그럭저럭 그럴 수 있다 생각하지만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현재 그 지역에 살고 있는 나라, 민족들은 아마 분노를 금치 못할 것 같습니다.

 

 

왜냐고요?

 

지금부터 그 이유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중화 민족은 서쪽의 민족들을 일컬어 '서융西戎'이라 칭하였는데 여기서 '융'이란 염소를 뜻합니다. 외관상 콧대가 높고 상대적으로 눈은 크고 움푹 꺼졌으며 동양인에 비해 얼굴에도 털이 무성하여 수염을 묶고 다니기까지도 했던 서양인을 마치 염소와 흡사하게 본 것이지요. 하지만 이조차 남쪽 민족에 비해서는 그나마 양반입니다.

 

중화 민족은 남쪽의 민족을 '남만南蠻'이라 불렀는데 여기서 '만'이란 다름 아닌 벌레를 뜻합니다.

 

남쪽은 아무래도 기후적으로 고온다습하여 강가나 우거진 우림 속에서 모기를 필두로 이름조차 모를 많은 벌레들이 서식했을 것입니다. 또한 '베르그만의 법칙'에 의하면 더운 지방에 사는 인종일수록 체격이 상대적으로 작은 데다가 태양에 의해 피부도 검게 그을렸을 테니 중화 민족은 이를 비하하여 남만이라 칭한 것이라 추측됩니다. 우리 민족 역시도 과거 역사를 통해 남쪽 지역 섬에 자리한 일본인들을 왜소하다는 뜻의 '왜'를 붙여 왜인이라 불렀지요.

 

 


여기서 잠깐, 베르그만의 법칙이란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정온 동물은 같은 종일 경우, 추운 곳에 살수록 일반적으로 체격이 크다는 법칙입니다. 반대인 '더운 곳에 살수록 일반적으로 체격이 작다'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자, 그럼 마지막으로 북쪽 민족이 남았는데 중화 민족은 이들을 무슨 짐승에 빗대 오랑캐라고 불렀을까요?

 

북쪽 민족은 '북적北狄'이라 불렸는데 여기서 '적'이란 개 혹은 멧돼지를 가리킵니다. 중원 민족에 비해 북쪽의 민족들은 추운 북쪽 지방에서 상대적으로 덩치가 크고 직물 옷이 아닌 짐승의 털 가죽 등을 주로 입었기에 아마 이를 보고 비하하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라 짐작됩니다.

 

아무튼 이 중화 민족의 사방 오랑캐 호칭은 인종적, 문화적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슨 개, 돼지 같은 짐승 아니 심지어 벌레에 빗대 표현한 아주 고약한 명칭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중화 민족의 천하관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기실 겁니다.

그럼 동이東夷는요? 이는 무슨 동물을 가리키나요?

자, 이제 아까 나중에 말씀드리기로 한 이의 진정한 비밀을 알려드릴 때가 왔습니다.

 

 

다들 마음의 준비, 되셨나요?

 

 

중국 후한시대에 허신許愼이 저술한 한문 사전으로 절대적 권위를 가진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후한의 학자 허신

 

‘이夷’는 ‘동방의 사람이다. ‘큰 대大’와 ‘활 궁弓’에서 유래하였다.’

 

여러분들은 혹시 파자破字라고 아시나요? 한자를 더하거나 나눠서 뜻풀이를 하는 일종의 언어유희이자 고대 암호이기도 합니다. 허신은 '이'라는 글자를 이렇게 클 대와 활 궁으로 나눠서 해석하고 있습니다.

 고구려 무용총 수렵도

 

그러고 보니 우리 민족은 고구려의 시조인 추모, 더 나아가서는 태양을 쏘아 떨어뜨렸다는 전설의 명궁 예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겠지만, 어쨌든 허신의 설문해자 해석을 봐도 우리 민족이 고대로부터 활의 민족이라고 불렸던 것이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제가 '동이'의 '이'에 대해 자긍심과 자랑을 늘어놓고 싶은 건 단순히 활을 잘 쏘는 민족,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동이에 대한 허신의 설문해자를 좀 더 살펴볼까요?

 

사람은 대개 그 사는 땅에 따라서 성격이 결정된다. 오직 동이만이 큰대에서 유래하였고 큰 성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동이의 풍속은 어질고 어질면 장수하므로, 군자가 끊이지 않는 나라이다. 생각건대, 하늘은 크고 땅도 크며 사람도 역시 그 성품이 크다.

 

타 민족에 대한 극찬도 이런 극찬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는 비단 설문해자를 편찬한 허신만이 아닙니다. 중국 청나라 때의 언어학자인 단옥재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청나라 학자 단옥재

 

'이'란 동쪽 사람이다.

남쪽 사람은 만이라고 한다. 벌레를 따라서다.

북은 적이라고 한다. 개와 같기 때문이다.

서는 융이라고 한다. 양을 따라서 같기 때문이다.

오직 동이만이 대의를 따르는 대인들이다.

이의 풍속은 어질다. 어진 사람은 장수하는 법이다.

그러므로 군자들이 죽지 않는 나라가 된 것이다.

 

이쯤 되면 여러분은 자부심, 이른바 국뽕이 차오르지 않으시나요? 동이에 대한 중화 민족의 흠모와 찬사는 단지 한나라 때만이 아닙니다.

유교의 시조로 추앙받는 공자孔子와 그 제자들의 문답집인 '논어論語'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중국 유교의 창시자 공자

 

공자께서 구이九夷에 살려고 하시니, 누군가가 말하기를 '그곳은 누추하니 어떻게 하시렵니까?'하였다. 공자께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군자'가 사는 곳인데 무슨 누추함이 있겠는가?'

 

아시다시피 공자가 살았던 시대는 중원의 춘추시대로서 겉으로는 존왕을 내세우지만 실질적으로는 무수한 국가들로 나뉘어 패자들이 힘겨루기를 하며 매일같이 죽고 죽이는 전쟁을 거듭 반복하는 암흑기였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통일된 국가로서 평화의 시기를 누리고 있던 동이가 사는 청구의 땅이 공자에게는 이상향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릅니다.

또 다른 기록을 살펴보겠습니다. 위진魏晉시대의 학자 곽박郭璞의 '산해경찬山海經讃’'또한 동이에 대한 칭송은 그 어디에 뒤지지 않습니다.

 

  위진 시대의 학자 곽박

[무료웹툰]선을 넘는 스무살

 

동방의 기운은 어질어서

나라에 군자국이 있다.

훈화초를 먹으며

독수리와 호랑이를 부린다.

본디 예를 지켜 사양하기를 좋아하고

예의는 논리에 따른다.

 

또한 동진東晋의 갈홍葛洪이 저술한 중국 도교의 경서 '포박자抱朴子'에선 중원 민족의 시조로서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칭송받는 황제黃帝 헌원軒轅이 동쪽의 청구 땅에 이르러 풍산을 지나다가 자부선인紫府仙人을 만나 가르침과 함께 삼황내문三皇內文을 받았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동진의 학자 갈홍

 

유교의 이대 성인 맹자

 

또한 공자와 더불어 유교의 두 성인 중 한 명인 맹자孟子의 서적 '이루장구離婁章句'에서는

 

순임금은 제풍에서 태어나시어 부하로 옮겼으며 명조에서 졸하시니 동이 사람이다.

 

라고 쓰여 있습니다. 여기서 순임금은 유교 학자들이 몇천 년에 걸쳐 가장 이상적인 군주로 손꼽아온 요순시대堯舜時代의 그 순임금을 말합니다.

 

청구라 불렸던 지역에 분포해 살고 있던 동이족에 대한 역대 중원 국가들의 찬사는 여기서 다 언급하자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경향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더 극에 이르게 되는데요.

 

중원의 역대 국가들은 동녘과 그 지역에 살고 있는 민족에 대해 일종의 신비로움과 경이, 혹은 동경의 대상으로 바라봤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나라 역사가 사마천

 

은나라의 시조 설은 동이족이다. 은나라는 이(동이)의 나라이고, 주나라는 화(중화)의 나라이다.

-사마천司馬遷 사기史記

 

동방의 사람들은 남자는 전부 허리에 요대를 차고 모자를 쓴다. 여자는 전부 색옷을 입고 항상 공손하게 앉는다. 그들은 상대방 명예를 존중하여 훼손하는 경우가 없으며 사람이 환란을 겪는 것을 보면 죽을 곳이라도 뛰어들어 도와준다.

-동방삭東方朔 신이경神異經

 

황제는 백민에서 났고, 동이족에 속한 사람이다.

-굴원屈原 초사楚辭

 

춘추필법에 의해 자국에 관한 것은 높이고 타국에 대한 것은 간소화 시키거나 내려깎아서 사서에 기술하는 중원의 역사서들에게서 시대를 초월하여 이리도 동이족에 대해 두려움과 동경, 때로는 경이로움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분명 자긍심을 가질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또한 주의하고 경계심을 가져야 할 점은 자민족에 대한 우월감으로 다른 민족에 대해 배타적이거나 선민사상을 내세우지는 말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자,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이이제이以夷制夷'에 대해 말해봅시다.

저는 이 사자성어에 대해 작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존경에 가까운 경이로움으로 동이족을 바라봤던 중원의 국가들은 진한秦漢 통일 왕조를 거쳐 갈수록 강성해지자 곧 동이족과 나라의 경계를 직접 맞대게 되고 서서히 서로 창을 겨누는 적국으로 강하게 인식되어 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농업 민족인 중화 민족이 인구수로는 압도적이라고는 하나 반농반유목으로 훌륭한 정예 기병 집단을 소유했으며 갈석산碣石山등의 뛰어난 제철 산지와 가공 기술이 발달한 동이족을 상대하기란 힘겨웠을 것입니다.

  중국 북경 인근 하북성 창려현 갈석산

 

게다가 허신의 파자를 통해 처음 언급했듯이 동이족은 궁사 실력이 월등히 뛰어나서 활의 사정거리가 중원 국가들의 궁사들에 비해 월등히 길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격렬하게 흔들리는 말위에서 몸을 뒤집어 뒤로 화살을 쏘아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일명 '파르티안 샷'이라고도 알려진 고난도 마상 궁사 법이지요.

 

  고구려 무용총 수렵도

따라서 '이이제이'라는 사자성어가 나온 역사적 배경은 중원의 역대 통일 왕조들로서도 홀로는 상대하기 버겁기에 동이족 국가들을 이간질 시켜 서로 싸우는 틈을 타 군세를 정비하여 한쪽이 약해졌을 때 침공을 하는 등의 편법을 동원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7세기 당나라 지도

 

과대망상이거나 억측이 아니냐고요?

 

한나라 이후로 이어졌던 수백 년간의 전란을 끝내고 중원을 통일한 수나라, 통일 과정에서 남진을 직접 정벌하기도 했던 이대 황제 양제는 야심만만하게 수백만 군사를 동원하여 동방의 고구려를 침공하였지만 연이은 패배로 결국 자신은 물론 왕조조차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그 뒤를 이은 것은 '정관의 치貞觀之治'라고 불리는 전성기를 일궜던 당나라의 이대황제인 당태종 이세민. 서역을 정벌하여 서역도호부를 두었을 뿐 아니라 역대 왕조들이 엄두도 낼 수조차 없었던 북방 평정이란 불후의 업적을 세운 그는 황제에 더하여 '천가한'으로 불리며 중원 역대 황제 중 가장 명민하고 뛰어난 인물로 평가받았습니다.

 

 당태종 이세민

 

자신만만하게 치밀한 전략을 세워 고구려 정벌을 시작했으나 그런 이세민조차 참패를 거듭하다가 전장에서 결국 병까지 얻어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일세의 영웅이었던 그의 마지막 유언은 '고구려 정벌을 중단하라'였습니다.

 

이후 당나라는 대규모 전쟁이 아닌 수십 년에 걸친 지구전과 고구려의 배후에 있던 신라, 백제와의 외교전을 펼치거나 동맹을 맺어 고구려를 공략하여 가까스로 승리를 할 수 있었으나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대대적인 부흥운동으로 다시 발해가 세워지게 됩니다.

 

오늘 처음으로 '역사의 뿌리' 블로그 글을 업로드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재밌게 보셨나요?

 

역사란 마르지 않는 지식의 샘물이기에 간신히 두 손을 모아 한 모금 목을 축이고 있는 저로서는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가르침을 청하고 소통을 하고 싶습니다. 언제든 포스팅에 대해 다른 견해나 오류 지적을 위해 댓글을 달아주시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오늘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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